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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샵은 왜 망할까? 지속가능과 수익성의 충돌

by scv94 2025. 5. 13.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소비로 주목받았던 제로웨이스트 샵이 전국 곳곳에서 폐업하고 있다. 분명 ‘지속가능성’이라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가치를 추구했지만, 현실의 벽은 냉혹했다. 본 글에서는 제로웨이스트 샵이 겪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고, 소비자와 사업자, 정책 입장에서 왜 지속가능성과 수익성이 충돌하는지 그 근본적 원인을 파헤친다.

제로웨이스트 샵은 왜 망할까? 지속가능과 수익성의 충돌
제로웨이스트 샵은 왜 망할까? 지속가능과 수익성의 충돌

환경을 위한 가게는 왜 살아남지 못하는가

제로웨이스트 샵(Zero Waste Shop)은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하고, 포장재 없이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가게다. 플라스틱 포장을 없애고, 리필 방식으로 세제나 식료품을 판매하며, 재사용 가능한 용기 사용을 유도하는 이들 매장은 2020년 전후로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착한 소비의 아이콘’이 되었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윤리적 소비, 환경 실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매장은 새로운 소비 트렌드의 중심에 선 듯 보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서울, 부산, 대전, 대구 등 주요 도시에서 운영되던 제로웨이스트 샵들이 속속 문을 닫고 있다. 일부 매장은 온라인으로 전환하거나, 친환경 콘셉트를 유지하면서도 대형 유통망에 편입되었지만, 독립 매장 형태로는 생존이 어려운 실정이다. 언뜻 보기에는 가치 있는 실천이 왜 시장에서 버티지 못하는 것일까? 문제는 이 비즈니스 모델이 ‘윤리적 선택’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실제 구매에서 ‘가격’과 ‘편의성’이라는 현실적인 요소를 더 크게 고려한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용기를 챙겨 세제를 사는 행동은 훌륭하지만, 매일 실천하기에는 번거롭고 불편하다. 게다가 제로웨이스트 샵의 제품은 대부분 소량 생산된 친환경 재료 기반으로, 일반 제품보다 가격이 높다. 결국 소비자는 ‘착한 소비’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일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제로웨이스트 샵은 점차 ‘이상적인 공간’에서 ‘실패한 실험’으로 전락하고 있다. 친환경 실천은 윤리적으로는 정당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가치와 비즈니스의 현실적 충돌

제로웨이스트 샵의 수익 구조는 전통적인 소매 유통 모델과는 다르다. 대량 생산·대량 유통 시스템에서 벗어나 소규모 유기농 제품, 수공예 용품, 무포장 상품 등을 소싱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단가가 높아진다. 여기에 자체 용기 제공, 리필 시스템 구축, 재활용 교육 등 추가적인 운영 비용도 발생한다. 결국 제품 가격은 높아지고, 소비자는 가격 경쟁력이 낮은 상품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입지 조건도 수익성에 영향을 준다. 제로웨이스트 샵은 대체로 지역 커뮤니티 중심으로 운영되며,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보다는 주택가나 문화지구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타겟 고객층인 ‘의식 있는 소비자’에게는 접근성이 좋지만, 대중적인 확산에는 불리한 구조다. 매장 하나하나가 커뮤니티의 거점이 되려면 지속적인 오프라인 이벤트, 환경 교육, 체험 프로그램 운영이 필요한데, 이 역시 인건비와 운영비 증가로 이어진다. 더 큰 문제는 **지속적인 재구매 유도 구조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리필 스테이션을 한 번 이용한 소비자가 재방문할 동기를 부여받지 못하거나, 친환경 제품의 품질이 일반 제품과 비교해 뚜렷한 차별성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소비자는 결국 편리함과 저렴함을 추구하게 된다. 이는 고객 충성도 확보에 실패하는 원인이 된다. 온라인 시장과의 경쟁도 치열하다. 대형 유통사는 ESG 마케팅의 일환으로 친환경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으며, 정기 배송·할인 쿠폰·무포장 옵션 제공 등 다양한 편의성을 결합해 제로웨이스트 샵의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 자본력이 부족한 소규모 제로웨이스트 샵은 이러한 유통 대기업과 정면 승부가 불가능하다. 정리하자면, 제로웨이스트 샵이 겪는 구조적 위기는 ▲가격 경쟁력 부족 ▲편의성 한계 ▲재구매율 저조 ▲과도한 운영 부담 ▲대형 플랫폼과의 경쟁이라는 다층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이는 단순히 경영 전략의 실패가 아닌, **착한 소비가 시장에서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불완전함**을 시사한다.

착한 소비가 살아남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제로웨이스트 샵이 처한 현실은 ‘가치 있는 소비가 반드시 수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냉정한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사회가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지금까지는 ‘환경은 중요하지만, 돈은 더 중요하다’는 소비자의 이중 잣대가 시장의 현실을 결정지었다. 그 결과, 지속가능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그렇다면 착한 소비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까? 해답은 ‘혼자서 싸우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첫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제로웨이스트 샵에 대한 임대료 감면, 세제 혜택, 용기 순환 시스템 지원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이는 환경을 위한 실천이 ‘벌점’이 아니라 ‘보상’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사회적 설계다. 둘째, 소비자 인식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 단순한 마케팅 캠페인을 넘어서, 환경 교육과 실천을 생활화하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제로웨이스트는 이벤트가 아니라 ‘습관’이어야 하며, 그것이 얼마나 실질적인 삶의 효율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소비자가 체감해야 한다. 예를 들어, 리필을 통해 실제 연간 얼마를 절약할 수 있는지, 무포장 구매가 얼마나 편리해질 수 있는지를 데이터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속가능성과 수익성 사이의 중간지대를 찾는 전략이 요구된다. 친환경 제품과 일반 제품을 함께 판매하거나, 자체 PB 브랜드를 개발하여 가격을 낮추고, 소비자 경험을 높이는 시도가 그것이다. 또한 지역 단위 협동조합 방식으로 자원을 공유하거나, ‘제로웨이스트 키트’와 같은 고부가가치 상품을 통해 수익 구조를 다변화할 수도 있다. 결국 착한 소비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치’와 ‘현실’ 사이의 균형을 잡는 방식이 필요하다. 윤리적 소비는 이상이 아니라 ‘기술’이 되어야 하며, 시스템 안에서 작동할 수 있는 구조적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제로웨이스트 샵은 실패한 실험이 아니라, 제대로 설계되지 못한 실험일 수 있다. 이제는 ‘좋은 뜻’만으로 버틸 수 없는 시대다. 착한 소비도 결국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생존은 단지 한 가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들어갈 미래의 경제 윤리와 직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