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격차 심화와 고령화 사회의 진입 속에서 가족 단위의 자산 관리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가족 자산관리사'라는 신직업이 주목받고 있다. 이 직업군의 역할, 수요 배경, 경제적 파급 효과를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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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 자산 이전이 만들어낸 새로운 경제적 필요
대한민국은 지금 ‘부의 대물림 시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가계 자산 중 상위 20%가 전체 자산의 약 7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자산은 고령 인구의 사망 및 생존에 따라 대규모로 후세대에 이전되고 있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고령화와 함께 향후 10~20년간 전례 없는 규모의 유산 이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따른 자산 관리와 세대 간 갈등, 세금 문제 등의 복합적 이슈가 함께 불거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가족 자산관리사’라는 새로운 형태의 직업군이다. 전통적인 자산관리(PB: Private Banker) 또는 회계사, 세무사와는 달리, 가족 전체의 자산과 구성원의 니즈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맞춤형 관리를 수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는 단순히 돈을 불리는 역할이 아니라, 상속, 증여, 부동산, 금융상품, 세금, 가업 승계, 가정 갈등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가족 재정 코디네이터’에 가깝다. 고액 자산가뿐만 아니라 중산층 이상 가구에서도 이러한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고 있으며, 이는 우리 사회의 자산 구조 변화가 단순한 재무 전략 차원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구조적 안정성까지 연결되는 문제임을 시사한다. 본 글에서는 가족 자산관리사라는 직업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이들이 수행하는 역할, 시장의 수요 변화와 경제적 파급 효과를 중심으로 이 직업군의 구조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자 한다.
'가족 자산관리사'라는 직업의 탄생 배경
가족 자산관리사의 등장은 단순한 금융 서비스 확대의 일환이 아니다. 이 직업군은 사회 구조와 자산 분포의 변화, 그리고 세대 간 갈등이라는 복합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첫째, 고령화의 가속화와 대규모 유산 이전이 가장 큰 배경이다. 60대 이상 인구는 이미 1,000만 명을 넘었고, 이들이 소유한 부동산과 금융자산은 국내 총 자산의 절반을 넘는다. 이들의 사망 또는 고령으로 인한 자산 이전 과정에서, 세금 설계, 법적 절차, 갈등 조정 등의 복합 문제가 발생하며 이를 전문적으로 관리해줄 인력이 필요해졌다. 둘째, 기존의 PB나 세무사, 회계사 등은 개별 자산 또는 특정 영역에 집중되어 있어, 가족 전체를 통합적으로 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반면 가족 자산관리사는 가족 구성원의 연령, 관계, 생활양식, 가업 여부, 부동산 분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족 단위 재무 설계’를 수행한다. 셋째, ‘가업 승계’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단순한 상속이 아닌 지속 가능한 자산 운용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부모 세대의 사업을 자녀 세대가 이어받거나, 부동산 임대업 등을 가족 공동 경영 형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조율 없이는 갈등과 비효율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넷째, 가족 간 갈등이 자산 이전의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 실제로 상속 재판 사례 중 약 30% 이상이 가족 간 분쟁으로 확대되며, 이로 인해 자산이 소송비용으로 낭비되거나 상속 구조가 파탄나는 사례도 많다. 가족 자산관리사는 이러한 갈등을 예방하고 조율하는 ‘재정 심리 상담사’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가족 중심의 자산관리’라는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이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가 본격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가족 자산관리사의 주요 업무와 경제적 효과
가족 자산관리사의 업무는 단순한 금융 상품 제안이나 자산 배분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역할을 복합적으로 수행한다. 첫째, 자산 구조 진단 및 종합 설계. 가족이 보유한 부동산, 예금, 주식, 연금, 보험 등의 자산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가족 구성원의 생애 주기 및 생활 방식에 맞춰 최적화한다. 둘째, 상속 및 증여 전략 수립. 세금 최적화를 고려하여 상속 시기, 방법, 절차를 설계하며, 필요한 경우 세무사, 변호사와 협력해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한다. 셋째, 부동산 및 가업 운영 컨설팅. 부동산의 용도 변경, 임대 수익 극대화, 자녀의 가업 참여 계획 등 구체적인 운영 전략을 제공하며, 필요시 부동산 전문가와 연계하여 실무까지 지원한다. 넷째, 가족회의 운영 및 갈등 중재. 자산 이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족 간 오해나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중립적 제3자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정기적인 가족 자산회의를 주관한다. 다섯째, 맞춤형 생애 재무 설계. 고령 부모의 요양, 자녀 교육 자금, 결혼, 주택 마련 등 생애 전환기의 주요 자금 수요에 맞춰 장기 재무 플랜을 수립한다. 이러한 업무는 기존의 단일 금융 서비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통합적 가치를 제공하며,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장기 계약 및 고수익 모델로 이어진다. 실제로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서는 이와 유사한 ‘패밀리 오피스(Family Office)’가 이미 정착되어 있으며, 한국에서도 자산 10억 이상 고액 자산가 가구를 중심으로 관련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가족 자산관리사의 등장은 부의 집중을 완화하고, 자산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며, 가족 단위의 경제 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는 곧 사회 전체의 자산 유동성 증가, 상속세의 정상 납부율 향상, 자산 분산 투자 활성화로 이어지는 긍정적 순환을 유도할 수 있다.
부의 대물림 시대, 새로운 금융 전문가의 필요성
가족 자산관리사는 단순한 신직업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부의 대물림’을 본격적으로 맞이하면서 나타난 구조적 변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고령화와 자산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가족 단위의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분배하는 역할은 단지 부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경제 안정성과 직결되는 과제다. 정부와 금융권은 이러한 직업군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자산관리와 관련된 윤리 기준, 자격 인증 제도, 전문 교육 커리큘럼 등을 도입해야 한다. 동시에 가족 자산관리사들은 단순한 전문가를 넘어, 고객의 삶과 가족사를 이해하고 신뢰를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제 심리 상담사’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 앞으로 10년은 국내 자산 구조가 재편되는 전환기다. 이 시기에 가족 자산관리사라는 전문 인력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이는 단지 하나의 직업이 아닌, 한국 사회의 부의 질서를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제로 작동할 것이다. 자산을 불리는 것만큼, 잘 나누는 것도 경제의 중요한 기능임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