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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생은 왜 월세보다 고시원을 택할까?

by scv94 2025. 5. 13.

고시원은 한때 취업 준비생이나 노년층의 임시 거주 공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학생들 사이에서 ‘월세 대안’으로 고시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본 글에서는 대학생들이 월세 자취방 대신 고시원을 선택하는 이유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그 선택이 의미하는 청년 주거 현실과 구조적 한계를 짚어본다.

 

요즘 대학생은 왜 월세보다 고시원을 택할까?
요즘 대학생은 왜 월세보다 고시원을 택할까?

 

좁고 불편한 고시원, 그런데도 선택하는 이유

고시원은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극단적 저소득층의 임시 거처’로 인식되어 왔다. 창문 하나 없이, 샤워실도 공동으로 사용하는 2~3평 남짓한 공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을 “어쩔 수 없이 머무는 곳”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고시원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서 월세 자취방이 아닌 고시원을 거주지로 선택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단지 돈이 없어서 고시원을 찾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계획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인 경우가 많다. 서울에 있는 20대 대학생 A씨는 “월세 자취방은 보증금 500에 월 50만 원, 관리비 포함하면 60만 원이 넘는데, 고시원은 식사 포함 40만 원”이라고 말했다. 식비와 관리비, 수도세, 인터넷 요금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지출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단순히 ‘저렴한 곳을 찾는’ 소비가 아니다. 청년층은 이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견딜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월세 부담이 커지고, 전세 제도가 무너진 상황에서 고시원은 일종의 현실적인 타협안이자, 비용 대비 효율을 중시한 주거 전략이 된 셈이다. 더불어 고시원은 입지 측면에서 경쟁력을 가진다. 대부분 대학가, 도심, 역세권에 위치해 있으며, 보증금 부담이 없고 즉시 입주가 가능하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방이 작고 불편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어차피 하루 대부분을 학교나 알바, 스터디카페에서 보내는 대학생 입장에서는 ‘잠만 잘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이처럼 대학생들이 고시원을 선택하는 흐름은 단순한 주거 트렌드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청년 주거 환경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선택지가 제한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고시원이 월세를 이긴 구조적 배경

고시원이 대학생 주거지로 자리 잡는 데에는 구조적 배경이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월세 가격의 급등**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대학가에서는 원룸 월세가 2020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 이상은 기본이며,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매달 70만 원 이상의 지출이 발생한다. 반면 고시원은 월 35만 원에서 50만 원대의 가격에 식사, 청소, 공과금까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보증금 부담의 회피**다. 대학생은 대부분 보증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다. 특히 비수도권 출신 학생들은 부모의 지원 없이 서울에서 거주지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시원은 보증금이 없거나 극히 소액(10만~30만 원 수준)이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다. 이 점은 경제적 독립을 추구하는 학생들에게 매력적이다. 세 번째는 **입지와 접근성**이다. 고시원은 주로 역세권, 대학교 인근,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통학이 편리하다. 반면 저렴한 월세 방은 대개 외곽 지역에 위치해 교통비와 시간이 더 든다. 시간과 체력을 아끼기 위한 선택으로 고시원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네 번째는 **생활의 간소화**다. 고시원은 좁은 공간에 최소한의 생활 도구만 들여놓을 수 있기 때문에, 짐을 줄이고 단순한 생활을 하기에 적합하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하거나, 공부와 아르바이트로 바쁜 일상 속에서 ‘침대와 책상만 있으면 된다’고 여기는 대학생들에게는 오히려 효율적인 선택이다. 다섯 번째는 **심리적 독립 공간의 확보**다. 하숙이나 쉐어하우스는 타인과의 일정 수준의 사회적 관계를 요구하지만, 고시원은 그에 비해 타인의 개입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보장된다. 폐쇄적이고 좁은 공간일지라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방’을 선호하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동시에 우리 사회가 청년에게 제공하는 주거 옵션이 얼마나 협소한지를 보여준다. 고시원은 임시 공간일 뿐이며, 안전, 환기, 방음, 화재 위험 등에서 여전히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현실과 타협한 주거 전략의 이면을 보여준다.

청년 주거의 현실, 고시원이 말해주는 것들

대학생이 고시원을 선택하는 것은 단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청년들이 주거를 결정함에 있어 얼마나 제한된 선택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단면이다. 고시원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수단이 되어버렸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경제 전략’이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책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청년 임대주택 확대, 공공기숙사 확충, 대학과 지자체 간 협력 거버넌스 구축 등을 통해 청년 주거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또한 ‘1인 청년 가구’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맞춤형 주거 복지 제도의 마련도 병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주거는 단순한 지출 항목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 휴식, 공부, 관계, 안전, 정신 건강과 직결된 ‘삶의 기반’이다. 좁고 습하고 어두운 고시원 방에서의 생활이 일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이 정도면 괜찮다’는 자기 설득이 반복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결국, ‘왜 대학생이 고시원을 택하는가’라는 질문은, ‘왜 우리는 청년에게 선택지를 주지 못했는가’라는 물음으로 돌아와야 한다. 고시원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다. 그 공간 안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청년들을 응원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더 나은 공간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응답해야 할 시점이다.